우리나라 영화판에도 사단이란 게 형성되어 있다. 정치적 결사체는 아니고 어떤 인연으로 맺어진 영화계 선후배관계이다. 탄탄한 충무로 역정을 기반으로 이제는 대기업까지 연결된 강우석 사단이 있고, 태생은 가난한 ‘연극무대’였던 장진 사단도 있다. 언젠가부터 김기덕 사단이란 것도 언론에 오르내린다. 김기덕 감독 본인이야 칸, 베를린, 베니스 등 세계의 내로라하는 국제영화제에서 위명을 떨친 명감독이지만 한국에서는 오히려 비주류감독으로 치부된다. 평단에서의 평가도 애매하고, 영화팬들은 여전히 그의 영화를 엽기라며 불편하게 여긴다. 게다가 어찌된 일인지 김 감독은 영화계 자본세력과의 트러블로 한동안 언론에서 멀어지는 듯 했다. 그런데 김 감독은 자신의 영화미학과 영화제작방식을 끝내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전수해왔다. <아름답다>(전재홍), <영화는 영화다>(장훈),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장철수) 등이 이른바 김기덕 감독사단의 작품으로 인식되고 있다. 여기에 또 한 편의 작품이 추가된다. 바로 전재홍 감독의 <풍산개>이다. <풍산개>는 어떤 영화이고, 김기덕 감독과의 ‘1촌맺기’ 영화방식이 어떤지 알아보자.

정체불명의 남자, 휴전선을 휘젓다

영화는 정체불명의 한 남자(윤계상)의 황당한 활약상을 그린다. 이 남자 누군가의 부탁을 받고 있다. 병실에서 다 죽어가는 한 할아버지의 한 맺힌 부탁은 이렇다. “내래 북의 고향에 두고 온 아내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소.....” 그럼 이 남자는 할아버지의 유언 장면을 캠코더에 담는다. 그리고는 모토사이클을 타고 일산 자유로를 달려 해안 철조망을 뛰어넘어 눈 깜짝할 사이 강물 속으로 사라지더니 어느 새 이북 땅에 숨어든다. 그리곤 재주껏 이산가족을 찾아가서는 그 영상을 보여준다. 이북의 가족들은 분단 반세기, 아니 60년 만에 만나는 남편과 아버지의 영상메시지에 흐느낀다. 그리고는 이번엔 답신. 남자는 그 장면도 고스란히 캠코더에 담고 월북루트를 거슬러 남으로 온다. 북한 인민군의 총부리도, 남한 초소근무병의 경계도 이 남자에겐 무용지물이다. 이 남자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토록 위험천만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치우는가. 어느 날 국정원 요원의 부탁(?)을 받게 된다. 국정원에서는 최근 북한의 고위급 인사를 보호 중이다. 이 남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북한의 최고급 기밀정보를 다 알려주겠다고 하면서 먼저 한 가지 소원을 들어달라고 한다. 이북에 있는 애인을 보고 싶다는 것이다. 국정원은 반신반의하며 ‘윤계상’에게 그 일을 맡겨본다. 이 남자는 3시간 내로 평양에서 그 여자를 직접 데리고 오겠다고 말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철조망을 뛰어넘어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곤 정말 평양에 잠입하여 고위층의 애인인 인옥(김규리)을 데리고 넘어갈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남으로 귀환한다. 이후 그는 남쪽의 국정원과 북쪽의 (아마도) 보위부 남파공작조 사이에서 위험한 거래를 이어간다. 그에겐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나 애국애족의 열정은 없어 보인다. 오직 누군가에게 필요한 부탁에 한 뭉텅이 돈을 받고 위험천만한 임무를 해줄 뿐이었다. 그러나 남과 북의 대치는 그렇게 한가하거나 호의적이지 않으며 일말의 회색지대를 용납하지 않는다.

김기덕, 생각하는 대로 찍는다

이 영화의 각본은 김기덕 감독이 직접 썼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초기부터 엽기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것은 설정자체가 비현실적이거나 평범하지 않다는데 연유한다. 그렇다고 절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지구상 어딘가에, 아니 한반도 어느 구석에선가는 저런 사람들이 저런 행동을 하고 있음이 분명할 것이라는 확신을 준다. 특히 김 감독 자신의 범상찮은 과거사를 전해 듣게 된다면 말이다. 그가 영화판에 뛰어든 것도, 그리고 이토록 오래 영화판에 발을 붙일 수 있었던 것도 시나리오 덕택이다. 그가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당선되고 이후에도 끊임없이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의 영화는 정제된 이야기구조라기보다는 충격적 설정을 상정하고 그 나머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다. 그의 초창기 인터뷰를 보면 그는 수많은 영화적 설정을 가슴에 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 드라마틱한 효과가 있는 극단적 설정이다. 군대 이야기도 빠질 수 없고 말이다. 그는 이미 그런 이야기들을 <섬>, <해안선>, <나쁜 남자> 등등을 통해 영상화에 성공했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풍산개>도 세상에 나왔다. 김 감독의 애초 설정은 ‘남과 북을 맘대로 오가는 정체불명의 남자’ 이야기이다. 그가 어떤 과거를 지녔고, 어떤 개인사를 지니고 있지는 설명할 필요도 파편적으로 심어놓을 까닭도 없을 것이다.

전재홍 감독, 재밌게 풀어내다

그런 김 감독의 이야기를 받아 유연하게 풀어낸 것은 전재홍 감독의 재능일 것이다. 너무나 황당한 극단적 설정을 술술 풀어나갔을 뿐만 아니라 장르를 맘껏 오간다. 분단비극을 다룬 드라마는 겉치레이며 대부분은 로맨틱 코미디로 흘러간다. 특히 북한 여자 인옥을 둘러싼 북한 고위급 인사의 행동은 ‘찌질한 남자의 치정극’수준과 그래도 이해할만한 ‘플라토닉 러브’를 오간다. 이 알 수 없는 스토리전개에 빠져들다 보면 어느새 멜로-액션의 클라이맥스에 이른다. 분명 생명을 희롱하는 납치극이지만 사랑과 희생의 눈물겨운 광경을 목도하게 된다.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다시 분단비극의 블랙 코미디로 안착한다는 것이다. 영화 후반부에서 룸살롱에서 질펀한 술자리를 즐기던 국정원 요원과 보위부 요원들이 ‘각기’ 납치되어 지하실에 내던져지는 장면이다. 폐쇄공간에 내던져진 남과 북의 대치전은 기막힌 메타포이다. 그들은 서로에게 증오의 주먹질과 결사적 총질을 해댄다. 그리고 한복판에 선택의 수류탄이 던져지는 것이다.

전재홍 감독은 성악도였단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비엔나에서 음악을 할 때 북한 유학생도 봤단다. 김정일의 아들 김정은이 스위스에서 공부했다고 했을 때 느꼈던 호기심만큼이나 전 감독의 유학생활이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그런 전 감독이 김기덕 사단의 일원이 되어 이런 흥미로운 시나리오를 재밌게 풀어낸 것이다.

영화팬의 즐거움

영화 개봉을 앞두고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나왔다. 이 영화에 일본 배우 오다기리 조가 나온다는 것이었다. 영화사의 설명을 듣고 다시 봐야만 그가 언제 어떻게 나오는지 알 수 있다. 북한 인민군으로 몇 초간 잠깐 등장한단다. 오다기리 조는 김기덕 감독의 <비몽>에 출연했었다. 그게 인연이 되어 이 영화에 깜짝 등장을 하는 것이다. 영화 마지막에 휴전선 임진각 벽에 나붙은 메모지 중에서 유독 ‘전재홍’이라는 이름이 눈에 띤다. 김기덕(전재홍) 감독은 영화의 잔재미도 즐길 줄 아는 사람 같다.

윤계상이나 김규리나 나머지 배우들, 스태프들이 무보수로, 아니 외상으로 출연하였다는 것도 흥미롭다. 흥행이 되면 수익을 나눠 갖는 품앗이 방식이다. 언젠가부터 충무로 영화는  어디선가 흘러들어온 거액의 금융자본으로 영화를 만들며 덩치만 키우다가 ‘또 다른 몰락 징후’를 보이고 있다. 그런 시점에서 김기덕의 영화만들기 방식은 참으로 강인하다는 느낌이 든다.

어쨌든 전재홍이나 오다기리 조나 윤계상이나 김규리나 모두 김기덕 감독에 엮인 일촌들이다. 한국영화의 일촌맺기는 이렇게 퍼져가는 모양이다. 소셜 네트워킹 시대의 초강추 영화이다. 이 리뷰 보시는 분이라면 이미 ‘김기덕’에게 반쯤은 엮인 사람일테니 인연을 중시해 보시라.

추신. 이 영화를 보면 배우들이 신선하다는 느낌이 든다. 얼굴도, 연기도. 처음 보는 배우 같다. 그런데 영화 초반 등장하는 이산가족 할아버지는 얼굴이 낯이 익다. 원로배우 유순철이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에도 나왔던 이 배우는 김기영 감독의 컬트 <이어도>(1977)에 나왔던 배우이다. 김기덕(전재홍)감독의 캐스팅 심미안도 참 특이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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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곰파일 정보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