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영화판에도 사단이란 게 형성되어 있다. 정치적 결사체는 아니고 어떤 인연으로 맺어진 영화계 선후배관계이다. 탄탄한 충무로 역정을 기반으로 이제는 대기업까지 연결된 강우석 사단이 있고, 태생은 가난한 ‘연극무대’였던 장진 사단도 있다. 언젠가부터 김기덕 사단이란 것도 언론에 오르내린다. 김기덕 감독 본인이야 칸, 베를린, 베니스 등 세계의 내로라하는 국제영화제에서 위명을 떨친 명감독이지만 한국에서는 오히려 비주류감독으로 치부된다. 평단에서의 평가도 애매하고, 영화팬들은 여전히 그의 영화를 엽기라며 불편하게 여긴다. 게다가 어찌된 일인지 김 감독은 영화계 자본세력과의 트러블로 한동안 언론에서 멀어지는 듯 했다. 그런데 김 감독은 자신의 영화미학과 영화제작방식을 끝내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전수해왔다. <아름답다>(전재홍), <영화는 영화다>(장훈),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장철수) 등이 이른바 김기덕 감독사단의 작품으로 인식되고 있다. 여기에 또 한 편의 작품이 추가된다. 바로 전재홍 감독의 <풍산개>이다. <풍산개>는 어떤 영화이고, 김기덕 감독과의 ‘1촌맺기’ 영화방식이 어떤지 알아보자.

정체불명의 남자, 휴전선을 휘젓다

영화는 정체불명의 한 남자(윤계상)의 황당한 활약상을 그린다. 이 남자 누군가의 부탁을 받고 있다. 병실에서 다 죽어가는 한 할아버지의 한 맺힌 부탁은 이렇다. “내래 북의 고향에 두고 온 아내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소.....” 그럼 이 남자는 할아버지의 유언 장면을 캠코더에 담는다. 그리고는 모토사이클을 타고 일산 자유로를 달려 해안 철조망을 뛰어넘어 눈 깜짝할 사이 강물 속으로 사라지더니 어느 새 이북 땅에 숨어든다. 그리곤 재주껏 이산가족을 찾아가서는 그 영상을 보여준다. 이북의 가족들은 분단 반세기, 아니 60년 만에 만나는 남편과 아버지의 영상메시지에 흐느낀다. 그리고는 이번엔 답신. 남자는 그 장면도 고스란히 캠코더에 담고 월북루트를 거슬러 남으로 온다. 북한 인민군의 총부리도, 남한 초소근무병의 경계도 이 남자에겐 무용지물이다. 이 남자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토록 위험천만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치우는가. 어느 날 국정원 요원의 부탁(?)을 받게 된다. 국정원에서는 최근 북한의 고위급 인사를 보호 중이다. 이 남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북한의 최고급 기밀정보를 다 알려주겠다고 하면서 먼저 한 가지 소원을 들어달라고 한다. 이북에 있는 애인을 보고 싶다는 것이다. 국정원은 반신반의하며 ‘윤계상’에게 그 일을 맡겨본다. 이 남자는 3시간 내로 평양에서 그 여자를 직접 데리고 오겠다고 말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철조망을 뛰어넘어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곤 정말 평양에 잠입하여 고위층의 애인인 인옥(김규리)을 데리고 넘어갈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남으로 귀환한다. 이후 그는 남쪽의 국정원과 북쪽의 (아마도) 보위부 남파공작조 사이에서 위험한 거래를 이어간다. 그에겐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나 애국애족의 열정은 없어 보인다. 오직 누군가에게 필요한 부탁에 한 뭉텅이 돈을 받고 위험천만한 임무를 해줄 뿐이었다. 그러나 남과 북의 대치는 그렇게 한가하거나 호의적이지 않으며 일말의 회색지대를 용납하지 않는다.

김기덕, 생각하는 대로 찍는다

이 영화의 각본은 김기덕 감독이 직접 썼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초기부터 엽기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것은 설정자체가 비현실적이거나 평범하지 않다는데 연유한다. 그렇다고 절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지구상 어딘가에, 아니 한반도 어느 구석에선가는 저런 사람들이 저런 행동을 하고 있음이 분명할 것이라는 확신을 준다. 특히 김 감독 자신의 범상찮은 과거사를 전해 듣게 된다면 말이다. 그가 영화판에 뛰어든 것도, 그리고 이토록 오래 영화판에 발을 붙일 수 있었던 것도 시나리오 덕택이다. 그가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당선되고 이후에도 끊임없이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의 영화는 정제된 이야기구조라기보다는 충격적 설정을 상정하고 그 나머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다. 그의 초창기 인터뷰를 보면 그는 수많은 영화적 설정을 가슴에 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 드라마틱한 효과가 있는 극단적 설정이다. 군대 이야기도 빠질 수 없고 말이다. 그는 이미 그런 이야기들을 <섬>, <해안선>, <나쁜 남자> 등등을 통해 영상화에 성공했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풍산개>도 세상에 나왔다. 김 감독의 애초 설정은 ‘남과 북을 맘대로 오가는 정체불명의 남자’ 이야기이다. 그가 어떤 과거를 지녔고, 어떤 개인사를 지니고 있지는 설명할 필요도 파편적으로 심어놓을 까닭도 없을 것이다.

전재홍 감독, 재밌게 풀어내다

그런 김 감독의 이야기를 받아 유연하게 풀어낸 것은 전재홍 감독의 재능일 것이다. 너무나 황당한 극단적 설정을 술술 풀어나갔을 뿐만 아니라 장르를 맘껏 오간다. 분단비극을 다룬 드라마는 겉치레이며 대부분은 로맨틱 코미디로 흘러간다. 특히 북한 여자 인옥을 둘러싼 북한 고위급 인사의 행동은 ‘찌질한 남자의 치정극’수준과 그래도 이해할만한 ‘플라토닉 러브’를 오간다. 이 알 수 없는 스토리전개에 빠져들다 보면 어느새 멜로-액션의 클라이맥스에 이른다. 분명 생명을 희롱하는 납치극이지만 사랑과 희생의 눈물겨운 광경을 목도하게 된다.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다시 분단비극의 블랙 코미디로 안착한다는 것이다. 영화 후반부에서 룸살롱에서 질펀한 술자리를 즐기던 국정원 요원과 보위부 요원들이 ‘각기’ 납치되어 지하실에 내던져지는 장면이다. 폐쇄공간에 내던져진 남과 북의 대치전은 기막힌 메타포이다. 그들은 서로에게 증오의 주먹질과 결사적 총질을 해댄다. 그리고 한복판에 선택의 수류탄이 던져지는 것이다.

전재홍 감독은 성악도였단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비엔나에서 음악을 할 때 북한 유학생도 봤단다. 김정일의 아들 김정은이 스위스에서 공부했다고 했을 때 느꼈던 호기심만큼이나 전 감독의 유학생활이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그런 전 감독이 김기덕 사단의 일원이 되어 이런 흥미로운 시나리오를 재밌게 풀어낸 것이다.

영화팬의 즐거움

영화 개봉을 앞두고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나왔다. 이 영화에 일본 배우 오다기리 조가 나온다는 것이었다. 영화사의 설명을 듣고 다시 봐야만 그가 언제 어떻게 나오는지 알 수 있다. 북한 인민군으로 몇 초간 잠깐 등장한단다. 오다기리 조는 김기덕 감독의 <비몽>에 출연했었다. 그게 인연이 되어 이 영화에 깜짝 등장을 하는 것이다. 영화 마지막에 휴전선 임진각 벽에 나붙은 메모지 중에서 유독 ‘전재홍’이라는 이름이 눈에 띤다. 김기덕(전재홍) 감독은 영화의 잔재미도 즐길 줄 아는 사람 같다.

윤계상이나 김규리나 나머지 배우들, 스태프들이 무보수로, 아니 외상으로 출연하였다는 것도 흥미롭다. 흥행이 되면 수익을 나눠 갖는 품앗이 방식이다. 언젠가부터 충무로 영화는  어디선가 흘러들어온 거액의 금융자본으로 영화를 만들며 덩치만 키우다가 ‘또 다른 몰락 징후’를 보이고 있다. 그런 시점에서 김기덕의 영화만들기 방식은 참으로 강인하다는 느낌이 든다.

어쨌든 전재홍이나 오다기리 조나 윤계상이나 김규리나 모두 김기덕 감독에 엮인 일촌들이다. 한국영화의 일촌맺기는 이렇게 퍼져가는 모양이다. 소셜 네트워킹 시대의 초강추 영화이다. 이 리뷰 보시는 분이라면 이미 ‘김기덕’에게 반쯤은 엮인 사람일테니 인연을 중시해 보시라.

추신. 이 영화를 보면 배우들이 신선하다는 느낌이 든다. 얼굴도, 연기도. 처음 보는 배우 같다. 그런데 영화 초반 등장하는 이산가족 할아버지는 얼굴이 낯이 익다. 원로배우 유순철이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에도 나왔던 이 배우는 김기영 감독의 컬트 <이어도>(1977)에 나왔던 배우이다. 김기덕(전재홍)감독의 캐스팅 심미안도 참 특이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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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여년 쯤 전에 KBS스페셜을 통해 <지금 북한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박재환영화리뷰)라는 충격적 북한르포가 방송된 적이 있다. 오랜 풍수재해와 폐쇄적 경제체제로 무너져 내리는 북한 내부의 모습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먹고사는 기본적 경제가 무너지면서 가정은 해체되고 중국국경 지대의 장터를 배회하며 걸인신세가 된 꽃제비를 다룬 내용이었다. 그리고 몇 년 전에는 김태균 감독의 <크로싱>(☞박재환영화리뷰)을 통해 같은 내용이 전달되었다. 이제 남쪽, 대한민국 사람은 분단된 조국의 윗마을에서 벌어지는 기아선상의 비극적 현실을 대체로 인식하고 있다. 얼마나, 언제까지, 혹은 어느 정도 심각한 문제인지는 이런 현재의 분단체제가 지속되는 한 영속적일 것이란 것도 다들 잘 알고 있다. 이들 배고픈 북한사람들은 남으로 내려오는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북으로(중국 쪽으로) 넘어가는 모험을 시도하고 있다. 함경도와 중국 길림성 연변시 조선족자치주를 가로지르는 두만강에서 바로 그 이야기가 펼쳐진다. 배고픈 북한인민은 강을 건너가고, 강 저쪽 중국 사람은 그들을 혈육의 정으로, 인간의 선으로 받아들이지만 그 현실적 한계를 잔혹하게 영상에 담고 있다. 장률 감독이 여섯 번째 작품 <두만강>이란 영화에선 말이다.


창호야, 내 동생이 배고파 죽어가고 있어…….


길림성 연변의 조선족 자치주와 북한 함경도를 사이에 둔 두만강 강변의 한 작은 마을. 분명 중국 땅이고, 그곳에 사는 주민은 대부분 조선족 핏줄을 가진 자들이다. 아마도 이곳 주민 대부분은 대를 거슬러 조금만 올라가도 북한 땅에 가족 형제가 하나쯤은 이어질 것이다. 현재로 말하자면 두 집 건너 한 집 꼴로 아빠나 엄마가 저 멀리 서울에서 식당에서, 막노동으로 코리아드림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이 마을에 남은 사람은 일할 의욕을 상실한 사람들이거나 홀로 남겨져서 친구들과 공터에서 ‘뽈’차기(축구)를 하는 아이들뿐이다. 창호도 그렇다. 엄마는 서울로 돈벌려갔다. 아빠는 오래 전 홍수가 났을 때 누나를 구하려다 빠져죽었다. 그 누나는 이젠 벙어리가 되어 엄마노릇을 한다. 할아버지는 묵묵히 빈집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창호는 추운 두만강 강변의 공터에서 동네 애들이랑 공놀이를 한다. 내리 3번을 진 아랫동네와의 축구시합에서 한번쯤 이겨봤음 하는 소망이 있을 뿐이다. 어느 날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 북한애가 먹을 것을 찾아 동네로 숨어든다. 창호로선 늘 보아오던 일. 북한인민들이 한밤에 몰래 강을 건너오다 북한군의 총에 맞아 죽거나, 중국 공안에 붙들러 송환되는 것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그들 조선(북한)사람들은 강을 건너다 죽고, 산을 넘다 낙오되어 죽는다. 창호는 그렇게 몰래 넘어온 북한아이 정진에게 관심이 간다. 평양까지 가서 공을 차보았다지 않은가. 창호는 정진에게 먹을 것을 주고 하룻밤 재워준다. 할아버지도, 누나도 북한아이 정진의 처지를 잘 안다. 그냥 두면 곧 죽거나, 얼마 있다 굶어 죽을 운명이란 것을. 정진은 쌀 포대를 얻어 다시 두만강을 넘어 돌아간다. 아픈 동생이 배고파할 것이기에. 남한 관객에겐 굶주린 아프리카 아이들 보는 것처럼 시혜적 시선으로 북한의 꽃제비를 쳐다보겠지만 두만 강변에 사는 조선족 중국인들은 정말 난처하고 애매한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다. 어느 날, 아무도 없는 집에 순희는 ‘불쌍한 마음에’ 북에서 넘어온 아저씨를 숨겨주고 먹여준다. 그리고 술까지 내준다. 그런데 하필 TV에선 북한방송이 잡힌다. “위대한 수령 김정일 동지가 인민의 열화 같은 환호를 받으며.... 어쩌고...” 이 북한 아저씨, 순간 광폭해지더니 순희를 겁탈한다. 상황은 급변한다. 불쌍한 북조선 인민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조금씩 싸늘해진다. 창호 또한. 아무것도 모르는 정진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두만강을 건너 찾아오지만 오해와 갈등, 불행한 현실은 통곡과 슬픔의 민족적 비극으로 모두 쓸어 담는다.

체면과 체면불구

지금도 우리는 북한의 작태를 매일같이 뉴스로 접한다. 내일 당장 망해버릴 것 같은 북한체제는 곧 죽어도 큰소리이다. 인민들도 마찬가지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밥 먹는 장면이다. 정진이 처음 넘어와서 창호네 집에서 밥을 먹을 때와 나쁜 북한 아저씨가 순희가 차려준 밥을 먹을 때이다. 두만강 조선족중국인들은 북한인민이 무엇보다 배고파하는 것을 잘 알기에 밥상을 차려준다. 그냥 밥상이라도 북한사람에게는 진수성찬이리라. 정진은 하얀 쌀밥이 담긴 밥그릇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만 있다. 이 밥 먹어도 되는 것인지 생각할까. 아니면, 이 밥 한 공기만 있었어도 우리 아바이 굶어죽지는 않았을 것인데 라고 생각할까. “어서 먹어.”라는 소리에 소년은 그제야 밥그릇을 한손에 들고 반찬을 수북이 얹더니 숟가락으로 퍼먹는다. 점점 빨리, 더 많이 입속으로 쓸어 담는다. 처음의 주저함, 주춤거림은 이내 사라지고 소년은 본능적으로 먹을 것이 있을 때 최대한 위장을 채워 넣으려는 듯 꿀꺽꿀꺽 삼킨다. 순희에게 밥을 얻어먹는 나쁜 아저씨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엔 밥그릇을 두고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어느새 우걱우걱 주워 삼킨다. ‘영광스런 북조선’ 인민의 자존심과 체면은 밥 한 공기에 산산이 날아간다. 그리고, 보는 우리 남한사람은 눈물이 다 날 지경이다. 겨우 밥 한 그릇에 말이다.

이 영화는 비극을 그릴 수밖에 없다. 북한의 문제는 북한인민의 문제이고, 통일 전이나 통일 이후나 그 막대한 대가를 짊어져야할 남한의 문제이지만 실질적으론 중국 또한 거대한 한 축으로 존재한다. 북한 인민이 얼어붙은 두만강을 넘어올 때 북한군인은 자신들의 인민을 쏘아죽이지만 (다행히 장률 감독은 그것을 땅땅..하는 총소리만을 공허하게 울린다) 중국 공안, 국경수비대는 결코 죽이지 않는다. 단지 잡아서 도로 돌려보낼 뿐이다. 그들이 돌아가서 수용소로 끌려가든 굶어죽든 말이다. 그것은 북한의 내부문제라고 오래 전에 중국은 규정지었다! 한국은? 한국정부는? 한국의 휴머니즘 철철 넘치는 사회종교단체는?

이 영화에서 중국과 북한을 오가며 장사를 하는 트럭에 북한인민을 몰래 태워 빼돌리는 조선족을 보여준다. 아마도 지금도 저 땅에서는 저런 식으로 목숨 걸고 배고픈 북한사람을 실어 나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돈 때문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위험하고 숭고한 일!

이 영화를 만든 장률 감독은 두만강 출신의 조선족이다. 연변대학을 나온 소설가이자 교수였다. 그러다가 영화감독이 되었다. 영화감독이 된 것도 별스럽다. 친구와 이야기 나누다가 “영화 같은 건 누구나 만들 수 있어!”라고 객기를 부렸단다. (아이폰도 없던 시절에 말이다!) 그리고는 실제 <11세>라는 단편을 만든다. 2000년에. 베니스국제영화제 단편경쟁부문에 진출했다. 그리고 그는 만드는 영화마다 수많은 국제영화제에 초청되었고 찬사를 받았다. 장예모나 그 이후 해외영화제에서 각광받는 중국영화감독들의 작품과는 다른 영상미학을 보여주었다.  장률 감독의 여섯 번째 작품 <두만강>은 프랑스와 한국의 자본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장률 감독으로서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아는 자기 동네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것이다. 이 영화를 두고 영화저널 쪽에서는 ‘시네아스트 장률 영상미학’ 어쩌구하는 찬사를 늘어놓겠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장률 감독이 말하고자한 바로 저 곳의 현존하는 실제적 비극인 것이다. 참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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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바 ‘살기 좋은 곳’이란 어떤 곳일까? 지진이나 쓰나미가 일어나지 않는 곳일 수도 있고, 명문학교 진학률이 높은 곳일 수도 있고,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일 수도 있다. 요즘에는 초고속인터넷 보급률이나 와이파이 접시 개수를 따질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범죄 없는 안전한 도시가 살기 좋은 곳이라면? 만약 그런 곳을 찾는다면 객관화된 수치로 검증할 수 있다. 하다못해 OECD국가 범죄율이나 5대 민생사범 체포율 같은 것도 계량화되어있는 세상이니 말이다. 세상이 도시화, 현대화, 문명화, 개인화되고 사회문제가 양극화되면서 다양한 이유로 각종 범죄가 발생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생기는 강력범죄들. 이런 문제를 잘 해결하면 여러 사람이 상 받고, 여러 사람이 영전하게 된다. 나라님도, 지역구 의원님도, 언론들도 그런 수치에 주목하고 그런 것에 스포트라이트를 쏟는다. 그러니 범인체포의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치안당국의 심정은 어떨까. 그물망같이 촘촘히 치안망을 구축하여 개미새끼 한 마리 못 빠져나가게 한다거나, 첨단범죄수사로 수십 년 전 사라진 범인도 잡아들이는데 온 힘을 기울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은 미국에서도 당연히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이보다 더 나은 ‘한국적’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아마도! 계량화된 시스템적 범인체포(포상) 방식인 것이다. 살인은 50점, 강도는 40점, 도박은 25점, 폭행은 20점, 절도는 10점같이 클린한 기준을 만든다면. 그러다가 온 국민을 공포에 떨게 하는 초강력 범죄자를 잡거나, 수년 동안 미제사건으로 남은 유괴범을 잡으면 1000점쯤은 한꺼번에 주는 것이다. 그래서 연말에 점수 많이 딴 경찰에게는 푸짐한 상품과 함께 포도왕의 영예를 안겨주는 방식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그럼 뭐..... 이 영화는 현실감이 전혀 없는 영화일 테고 말이다.

 

마포경찰서, 영등포 경찰서 실적경쟁에 올인하다

서울특별시에는 모두 25개의 자치구가 있고 31의 산하 경찰서가 있다. 그 중 마포서와 영등포서는 서로 이웃하고 있다.(한강을 사이에 두고!) 이들 두 서는 라이벌 체제이다. 상부(서울지방경찰청)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범인 잡아라!” “미제해결 빨리 해결하라!” “서울시민 맘 놓고 살 수 있게 하라!”고 채근한다. 소시민에겐 가장 귀에 쏙 들어오는 것이 아마도 “우리 아이들 맘 놓고 학교 갔다 올 수 있도록 하라!”일 것이다. 마포경찰서 황재성 팀장(박중훈)은 뺀질이같이 보이지만 적어도 범인체포라는 실적쌓기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달인’이다. 경찰대 출신이 아닌 필드에서부터 올라온 사람이다 보니 그 누구보다 열심히, 재주껏, 요령을 다해 실적을 쌓는다. 나쁜 놈은 무조건 잡아들인다. 잡다보면 점수가 올라가고 그러다보면 관할주민이 더 잘 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가끔은 무리수도 둔다. 잡범도 잡아들이고, 민생사범에게도 가차 없다. 훔친 것은 분명 훔친 것이고 죄는 죄이니 말이다. 폐지 줍는 할머니까지 잡아들이며 “아휴, 걱정 마세요. 판사가 풀어줄 거예요..”라며. 이웃 영등포에 신임 팀장이 온다. 정의찬 강력3팀장(이선균). 경찰대 출신이다.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군대는 육사출신과 비육사출신이, 경찰은 경찰대출신과 비경찰대 출신이 성골-진골마냥 나뉘어 있고 그들의 출세가도가 다르다는 사회적 인식이 고스란히 반영된다. 영등포 정의찬 반장은 관할 서 상황파악도 하기 전에 마포서의 황재성 반장과 신경전을 넘어서는 경쟁을 펼치게 된다. 다 잡아놓은 범인을 코앞에서 빼앗기는 일도 벌어진다. 그 와중에 이 일대에서 엄청난 초강력 사건이 발생한다. 오피스텔 여자를 상대로 한 연쇄강간범. 언론에서는 난리이고 잡기만 하면 일거에 2,000점을 획득할 수 있단다. 그럼 반장은 승진할 것이고, 서장은 잘하면 청와대 근무로 영전할 수도 있단다. “민생치안... 좋은 말이죠.. 그나저나 우리는 일단 잡아들이고 점수 받아야합니다.”라는 경찰들은 오늘도 용의자 집 앞에서 잠복근무하고, 집이고 가정이고 다 포기하며 ‘범인검거’에 올인할 것이다. 인간적인, 그리고 비인간적인 대한민국 경찰의 현실을 지금 보시라!

 대한민국 경찰, 이렇소 - 비리편

 영화 보면 초반부에 대한민국 경찰의 실적경쟁 쌓기 모습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그 리얼함은 하드보일드 터치가 아니라 코믹 터치이다. 벽면 가득하게 검거율 그래프와 현상수배범 사진이 붙어있는 경찰서에서 짜장면 시켜먹고, 사무실에는 시도 때도 없이 잡범이 들락거리는 그런 눈에 익은 광경들. 두 경찰서의 한심한, 그러나 나름 열심인 범인검거 작전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이 영화가 과연 대한민국 경찰의 적극적인 지원, 혹은 암묵적인 도움을 받았을까 싶은 의문이 일 정도이다. 아무리 코믹하게 그렸더라도 경찰의 치부가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니 말이다. 특히 관할 도박장(오락장) 업소 사장을 불러 모아 놓고는 브리핑과 함께 단속 정보를 로또 번호 미리 알려주기처럼 귀띔하는 장면은 <투캅스>의 20년 진화형 한국경찰모습이리라. 경찰이 피라미급을 잡아 협박하여 정보를 알아내는 고전적인 방식도 ‘매일 신문에 나고 있는 골치 아픈 사연들일 뿐’.

대한민국 경찰, 이렇소 - 고생편

사실, 대한민국 경찰을 비리와 부정으로 얼룩진 집단으로만 매도할 수는 없다. 아무리 아침마다 신문 사회면에서 어두운 기사를 보게 되더라도 말이다. 따지고 보면 그 신문 정치면에서는 나쁜 짓하는 국회의원 볼 수 있고, 사흘이 멀다하고 나쁜 짓하는 학교 선생들 이야기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많은 경찰은 더 열심히 나쁜 놈을 잡아들이고 있으니 말이다.

점수쌓기에만 올인하는 영등포서 박중훈 반장에게도 말 못할 사연이 있을 것이다. (비경찰대 출신인) 그가 그 자리에 오른 것은 아마도 가족도 포기하고, 개인사도 온연히 포기하고 오직 범인 잡기에만 매달린 결과이리라. 경찰대 출신이라고 다르리오. 이선균은 폼 나는 엘리트 경찰하고는 거리가 멀다. 어제까지 육법전서 외고, 승진시험 공부하다가 오늘 갑자기 필드에서 땀 냄새 풍기며 잡범과 강력범을 쫓아 뛰어다니는 것이다. 정의사회구현 같은 아름다운 구호는 나중의 문제이다. 이해한다. 그들의 노고를!

박중훈, 이선균, 그리고 명품조역들


박중훈은 20년 전 <투캅스>에서 ‘비리경찰’ 안성기 밑으로 들어온 경찰대 출신 풋내기 형사로 경찰과 연을 맺었었다. 박중훈은 그 후 코믹영화에서 발군의 기량을 보이며 한국영화의 한 시대를 풍미했었다. 그리고 이번이 6번째 경찰 역할이란다. 뛸 만큼 뛰었고 살만큼 살았으니 그에게는 한국영화의 현실에 대해서만큼 대한민국경찰에 대해서도 보통이상의 애정과 실질적 시선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는 능구렁이 강력반장 역할은 멋있게 해치운다. 얄미울 정도의 노하우로 실적쌓기에 함몰된 인간적인 형사. 그리고 범인검거에 실패하고 승진에서 밀려난 좌절감. 청춘을 다 바쳐 밤이고 낮이고 경찰에 투신해왔던 자신의 직업이나 작업노선에 대한 회의감. 박중훈 형사가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에 대한 리얼리티나 연계성 부족이이라는 평가가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여백의 미다. 그의 청춘을 생각해보면 어느 순간, 별안간 ‘착한 경찰’이 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으니 말이다. 이해한다. 한국경찰!

두 경찰서 서장 주진모와 이한위의 연기도 달인 수준이다. 시민들은 매일 터져 나오는 초강력 범죄 관련 기사에 대해서 경악한다. 그리고 더 높으신 분들은 당연히 경찰을 닦달할 것이고. 뛰는 경찰을 불러 모아 ‘더 뛰어!’라고 채근해야하는 이들의 고뇌가 묻어난다. 박중훈과 이선균의 팀원들을 연기한 조연들도 하나같이 땀 냄새와 현실감이 묻어있다.

 
그리고 범죄사실

영화는 확실히 코미디이다. 그러나 다루는 범죄는 비극적 사건이다. 실제 ‘마포 발바리 사건’으로 알려진 연쇄강간범 이야기이다. 오랫동안 같은 사건이 계속 일어나니 경찰도 미쳐버릴 것이다. 정말 이전 <살인의 추억>의 카피처럼 미치도록 잡고 싶을 것’ 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범인은 사이코패스이고, 어두운 과거를 지닌 잔혹범일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선 범인이 뜻밖에도 ‘오피니언 리더’로 설정되어 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이른바 ‘떡찰’과 ‘언론’이 나란히 손잡고 ‘이너서클’의 범죄를 눈감아 준다는 암울한 현실의 사회극은 아니다. (영화 보면 알겠지만) 사진 액자의 플레임으로 범인을 잡는 ‘나름’ 최첨단 육감 수사의 한국경찰을 코믹하게, 그리고 휴머니티 콸콸콸 넘치게 그린 ‘한국’ 영화이다. 재밌다.

그리고, 이런 영화를 눈감아는 주는 한국 경찰청의 대민서비스정신은 칭찬받을 만하다. 경찰 좀 더 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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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 TV드라마 <시크릿 가든>을 통해 '주원앓이' 열풍을 몰고 왔던 현빈 주연의 영화 <만추>가 드디어 극장에서 개봉될 에정이다. 이 영화는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국내 팬에게 공개되었다. (물론, 그 전에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먼저 소개되었다.) 당시 현빈과 탕웨이, 그리고 김태용 감독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도 열렸는데 제작자는 이 영화가 곧 극장 개봉될 것이라고 호언했다. 그런데 영화는 쉽게 개봉되지 못했다. 현빈의 인기나, 탕웨이가 갖고 있는 이슈도 이 영화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다가 정말 운좋게 현빈드라마의 폭발적 인기에 힘입어 극장개봉이 실현된 것이다. 영화는 그 소재로 보나 영상으로 보나 무겁고 암울하다. 그런데, 김태용 감독은 이러한 영화를 두 배우의 반짝거리는 매력으로 가득 채웠고, 안개 가득한 시애틀의 음울한 날씨마저 이 영화를 관광영화로 만들어놓았다.

여자 죄수, 사흘간 사랑에 빠지다

 영화의 시작은 미국 시애틀의 한적한 주택가에서 시작된다. 눈가에 퍼런 멍이 든 한 여자가 반쯤은 얼이 빠진 채 주택가 도로를 비틀거리며 걸어 내려온다. 그러다가 문득 정신이 들어 다시 자기 집으로 뛰어간다. 거실에는 한 남자가 쓰러져있다. 이 여자, 미국이민자 중국여성 애나(탕웨이)는 남편을 살해한 것이다. 그리고 7년의 세월이 흐른 뒤, 애나는 교도소에서 잠시 외박을 나온다. 딱, 72시간!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도록 허락된 것이다. 애나는 집으로 가는 고속버스에 멍하니 앉아있다. 버스가 막 출발할 즈음, 한 동양인이 버스에 허겁지겁 올라탄다. 버스비가 없는 모양이다. 애나에게 다가와서는 한국말을 해보더니, 곧 영어로 30달러를 빌려달란다. 둘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한다. 여자는 사흘 뒤 감옥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사람이고, 이 남자는 미국 땅에서 한국교포여자를 상대로 ‘포근한’ 몸장사를 하는 한국인 지골로이다. 서로가 그렇고 그런 과거와 현재를 가진 처지이기에 뾰족하게 끌릴 것도, 물릴 칠 것도 없는 그런 상황이다. 하지만 남자는 곧 이 여자에게 빠져든다. 도도한 얼굴빛의 이 여자도 곧 이 남자에게 끌릴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서로에게서 과거를 눈감고 현재를 외면하고 내일을 기약 없이 말할 수 있는 상대란 것을 곧바로 느꼈을 것이기 때문이다. 눈 깜짝할 사이 약속된 시간을 지나고 애나는 교도소로 돌아간다. 남자는 이루지 못할 약속처럼 “네가 나올 때 이곳에서 기다릴게”라고 말한다. 안개만 가득한 시애틀, 인적 드문 고속버스 간이정류소. 커피숍에서 애나는 창밖을 하염없이 내다보며 남자를 기다린다.

만추라는 영화, 이주익이라는 제작자

이 영화는 1966년에 이만희 감독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다. 물론, 중국여배우도 시애틀도 등장하지 않는 한국영화이다. 가출옥한 한 여자죄수가 짧은 시간동안 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내용이다. 아쉽게도 이만희 감독의 필름은 현재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오랫동안 이 영화는 한국 최고의 영화로 손꼽혀왔다. 그 명성을 증명이라도 해주듯이 여러 차례 리메이크되었다. 일본에서도 만들어졌고, 김혜자 주연으로도 만들어졌었다. (<마더>의 그 김혜자!) 그러나 대부분의 요즘 영화팬들은 이 영화에 대해 그 명성만큼 진면목을 알 수는 없었다. 몇 해 전 이주익이라는 영화제작자가 이 영화의 리메이크를 처음 이야기했을 때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이주익 보람영화사 대표는 이전부터 한국영화와 해외영화계의 합작을  주창해온 글로벌 영화인이다. 비록 진개가(천카이거) 감독의 <몽듀도원도>(최인호 원작)는 한국에서 제작발표회까지 가지며 기대를 갖게 했지만 프로젝트는 엎어진 상태이다.(대신 소품이라 할 <투게더>가 만들어졌다) 그의 야심은 계속 되었다. 견자단(김소연)을 끌어들여 <칠검>을 만들었고, 유덕화(안성기/최시원)을 엮어 <묵공>을 만든다. 이들 영화는 중국과 홍콩, 일본의 자본을 끌어들이며 효율적이며 안정적인 제작방식을 창조해내었다. 그리고 할리우드 자본까지 동원하여 장동건의 <워리어스 웨이>를 만든다. 그는 10여 년을 영화판에 있으면서 다양한 시도를 해본다. 몇 해 전 모든 합작영화가 ‘무협/액션’에 과몰입한다고 우려를 표명했을 때 그는 일찌감치 또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지금 영화팬에게는 생소한 이만희 감독의 <만추> 리메이크이다. 무협액션에서 비켜간 <만추>는 문예물, 멜로물, 드라마이다. 심성에 자극하고, 스토리에 초점을 맞춘 정공법적 선택인 것이다. 그는 영화성공이란 대중의 심성을 끌어들이는 스토리가 얼마나 공감을 얻을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만추>가 보여주는 ‘낯선 공간에서의 낯선 이의 사랑이야기’가 사람들의 호기심과 기대를 이끌어낼 수 있으리라 본 것이다. 게다가 그는 합작영화를 통해 익힌 캐스팅의 마력을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한다. 현빈의 국내적 인기는 최고수준이고, 탕웨이의 화제는 글로벌하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주익 대표는 <만추>에 대해선 참 복 받은 선택이다. (그간의 고생을 한 번에 커버할 만큼 말이다.)

남자의 직업, 여자의 과거

시크릿 가든>에서 대책 없는 매력을 보여준 현빈은 이 영화에서 ‘지골로’ 역을 맡는다. 리처드 기어가 출연했던 <아메리칸 지골로>에서처럼 고객에게 최선의 서비스로 최상의 만족을 안겨주는 남자이다. 현빈의 연기는 그동안 보아온 한국적 ‘제비’와는 스타일이 달라 보인다. 외로운 누님의 말벗이 되어주고, 아무리 어려운 처지에서도 웃음과 자제, ‘고객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주원앓이’의 연장선에 놓여있다. 그래도 가정파괴범인 것은 어쩔 수 없고 자신의 현재와 미래의 비극을 앞당기는 직업임에는 틀림없다. 미국으로 건너와서, 고급 손목시계가 상징하듯 한국인 유한마담에게서 용돈을 풍성하게 받아쓸 수 있는 조건이지만 그에게는 현재의 자신을 벗어날 누군가/무언가가 간절히 필요했을 것이다. 자신의 과거까지, 그 아픔까지 사랑할 상대 말이다. 이럴 경우 서로 말이 통하지 않거나, 말이 그다지 필요 없는 외국인이 더 나을 것이다. 비록 영어로 대사를 나눌지언정 마음속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는 상대. 그런데, 그런 그에게 다가온 여자는 비록 영어로 대사를 나누지만 어느새 서로의 마음 속 깊은 아픔을 이해하는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탕웨이는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기자회견장에서도 기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었다. 자신감과 자의식이 충만한 여배우의 매력을 맘껏 발산했다. 이번에 만추 개봉을 앞두고 한국에 와서도 “현빈왔숑 현빈왔숑”하는 귀여운 멘트로  박수갈채를 받았다. 현빈에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영화이지만 <만추>는 기본적으로 여자주인공의 영화이다. 여자가 교도소에 가는 것도 교도소에 잠시 나온 것도 그 여인네의 아픈 과거와 짧은 사랑을 돋아내는 것이다.

시애틀의 미드나잇 카우보이

이 영화에서는 기억에 남을 인상적인 장면이 많다. 시애틀의 안개 장면은 물론 훈과 애나가 쏘다니는 시애틀의 데이트코스도 멋지다. 특히 시애틀 놀이동산에서 펼치는 두 사람의 ‘더빙 쇼’ 장면은 마치 우디 앨런의 작품을 보는 것 같은 매력을 안겨준다. 상처받은 영혼들이 각자의 심정을 이입시키는 영화적 장치이다. 또한 기억에 남는 장면은 짧은 자유의 공기를 만끽하는 애나가 옷가게에서 옷을 입어보고, 귀걸이를 다시 하며(7년 만에 귀걸이를 하며 잠깐 눈을 찌푸리는 장면!), 그랬다가 공중화장실에서 그 옷을 벗어버리고 그냥 가버리는 장면이다. 억눌린 여자의 갈망은 곧바로 이어지는 훈과의 베드신에서 복잡한 심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김태용 감독의 자제된 연출력은 이 영화의 매력을 십분 끌어올린다. 영화 전체는 우울한 기조를 보여주지만 씬 하나하나가 한 땀 한 땀 장인의 공든 노력이 묻어난다. 김우형 촬영감독의 영상미도 아름답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시애틀의 분위기가 영원히 저런 식으로 고착될 만큼 강인한 인상을 남겼다.

영화는 <아메리칸 지골로>의 궤적을 따르지만 그 결론은 ‘미드나이트 카우보이’만큼 가슴을 휑하게 만든다. 마치 하나뿐인 내 ‘포크’를 빼앗긴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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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의 강우석 감독은 <쉬리>의 강제규 감독과 함께 영화연출에서뿐만 아니라 한국영화의 판을 키운 명기획자, 명제작자이다. 그는 요즘과는 한국영화의 규모나 저널의 접근법이 달랐던 충무로 시절에 연출부로 입문하며 한국영화 감독의 길을 걸어왔다. <투캅스>, <실미도>같은 대단한 영화를 만들기 훨씬 이전에 그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나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같은 영화를 만들었던 사람이다. 그가 이런저런 영화를 만들더니 이번에 내놓은 작품은 뜻밖에도 <글러브>라는 스포츠 영화이다. 운동경기를 통해 팀원들 간의 협동정신을 이해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느끼게 된다는 구조이다. 강우석 감독의 이러한 필모그래피를 보노라면 대만의 이안 감독이 생각날 정도이다. 다양한 영화 장르에 대한 연출욕심 말이다. 그는 뛰어난 현장 장악력과 시장 개척력을 가진 한국영화계의 큰 보배임에는 틀림없다. 뜬금없이 나온 야구드라마라고는 하지만 작금의 한국의 야구열기에 비해서는 조금 때늦은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추락하는 프로 선수, 성심에서 길을 보다

전도유망한 어린 야구선수 차명재가 봉황대기 야구시합 중 돌발사고로 경기장을 떠난다. 경기 중 갑자기 찾아온 돌발성 난청으로 청력을 잃고 자신의 꿈이었던 야구를 포기해야했다. 한편 프로야구 최고의 간판투수 김상남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다. 술 먹고 행패부리다가 KBO의 징계위기에 내몰린다. 그의 오랜 야구동료이며 지금은 그의 매니저인 정철수는 김상남을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뛴다. ‘뻔 한 쇼’이지만 유일한 무마책으로 잠시 시골마을 학교 코치로 내려가 있으란다. 끝없는 슬럼프에 몸부림치던 김상남은 어쩔 수 없이 그 학교를 찾아간다. 충주 성심학교이다. 청각장애인만 다니는 특수학교이다. 왕년의 명투수 김상남은 이곳에서 청각장애인 야구선수단을 만나게 된다. 딱 10 명인 선수. 그리고 무슨 이유인지 그런 선수에게 모든 정성과 사랑을 다 쏟는 나주원 선생과 교감선생을 만나면서 선수 2막, 아니 인생 전환점을 맞게 된다. KBO의 징계절차가 무사히 마무리되기를 기다리며 마지못해 시골 특수학교에 잠수한 야구선수는 그곳에서 들을 수 없고,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는, 그래서 더욱 실력이 형편없는 10명의 야구선수 학생들과 한동안 부대끼며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뻔한 스토리, 뻔한 캐릭터, 뻔한 감동드라마

영화는 크게 두 개의 커다란 줄기를 가지고 있다. 왕년의 잘 나가던 프로야구 선수가 지독한 슬럼프에 헤매다가 탈출구를 찾는다. 자신의 희망과 매니저의 애절한 기대와는 달리 그는 더 이상 그 왕년의 날리던 선수가 아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현실에 대해 조금씩 타협점을 찾게 될 것이다. 그 계기는 물론 10명의 성심야구단 선수들이다. 이 학교는 개교이래 단 한 번도 상대팀을 이겨본 적이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투수는 단 한 명뿐이고, 선수들의 기량은 의욕과는 관계없이 밑바닥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이 그들에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는데 영화에서 중계를 하는 해설위원을 통해 조금 알게 된다. 타자가 ‘깡~’하고 외야플라이를 날렸을 때,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이들은 공이 어디로 날아갈지 감을 잡을 수 없고 방향을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저만치 날아가는 것을 보게 될 때 그제야 허겁지겁 달려가게 된다. 하지만 이들은 야구 글러브를 꼈을 때 가장 행복하고, 안타를 칠 때 그 배트를 통해 전달되는 생의 환희를 듣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비웃거나, 불쌍해하거나, 동정할 때 말이다. 물론, 김상남 선수가 보기에는 그런 ‘동정과 환희’는 값싼 유희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들이 왜 그런 수고를 하는지, 왜 그런 패배를 거듭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영화는 스포츠영화의 정석을 따라간다. 선수들이 흘리는 땀과, 그 과정에서 흔히 발생하는 서로간의 트러블을 보여준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겐 모두 눈물 흘리고 박수 보낼만한 사연이 있을 것이다. 결국 마지막 승부에서 멋지게 이기거나, 아니 지더라도 멋진 명장면을 연출할 것이다. 그래서 패배의 눈물을 흘리더라도 충분히 경배 받은 경기를 보여줄 것이다. 그렇지 않은 스포츠영화가 어디 있었으리오.

강석우 감독은 그런 뻔한 드라마를 천연덕스럽게 밀어붙인다. 프로야구선수는 까칠할대로 까칠하고, 불친절할대로 불친절하다. 그러나 관객은 그런 판에 박은 만남을 곧바로 안다. 나주원 선생과의 로맨스도 펼쳐질 것이고 아이들과도 의기투합할 것이란 사실을. 그러면서 선수는 LG트윈스의 삶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고 선수들의 진정한 목표가 1승이 아님을 가슴으로 알게 된다.

 이 영화는 장애인을 특별하게 보거나 유별나게 쳐다보는 영화가 결코 아니다. 그것이 이 영화의 미덕이다. 그들의 특별한 사연은 나오지 않는다. 누구나 갖고 있을법한 가족이야기나 사회의 멸시 같은 것은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들은 일반 야구선수와 똑같다. 아니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충주성심학교 야구선수들은 ‘야구라는 영역’에선 잘 못할 뿐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만큼 더 많이 뛰고, 더 많은 땀을 흘러 단 한번만이라도 이겨보려고 노력한다. 그 과정이 아름답고 인간적인 것이다. 그들이 단 한번이라도 이기게 되면 어떨까. 아마도 10명의 선수들은 10개의 서로 다른 꿈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2승을 올리기 위해 계속 뛰든지, 아니면 새로이 축구에 도전하든지. 어딘가에 당신을 온전히 던져버릴 수 있다는 그 열정이 아름다운 것 아닌가.

아마도, 프로야구 개 차 반 김상남 선수는 자신의 야구인생을 그렇게 결론지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한 때는 저렇게 아무 생각 없이 야구공만 던졌던 적이 있었지...”라고.

많이 알려진 만년패전팀 서울대 야구팀 이야기도 있잖은가. 그런데 기사를 찾아보니 이 팀은 2004년에 감격적인 1승을 올렸단다. 그런데 여전히 그들은 코피 흘리며 열심히 공부하고 틈틈이 야구연습한 뒤 일반대회에 나가 결코 1승도 못 올리지만 최선을 다한다는 이야기만을 기억하려고 한다. 충주 성심학교의 1승을 기대하면서도 그 1승이 영원히 내일의 1승이기를 기원하는 이유이다. 그 열정이 삶의 열정이기에. 정재영과 모든 배우들이 열연한 <글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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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월적 유전자라도 지니고 태어난 듯 눈부신 외모를 자랑하는 강동원과 고수가 주연을 맡은 영화 <초능력자>가 다음 주 개봉된다. 이미 신예 김민석 감독의 예사롭지 않은 연출력과 두 배우의 아우라가 창출하는 포스가 보통을 넘는다는 입소문이 파다했기에 <초능력자>의 시사회장은 한껏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강동원은 <의형제>와 <전우치전>으로 흥행에서 연타석 홈런을 날렸고, 고수 또한 제대 후 <백야행> 등으로 안정된 연기력을 보여주며 충무로의 다크호스가 되었다. 분명 <초능력자>는 올 연말 기대되는 한국영화임에는 분명하다.

저주받은 초능력

영화는 초인(강동원)의 어린 시절을 잠깐 보여준다. 금세라도 비가 쏟아질 듯한 우중충한 1991년의 서울이다. 소년은 가정폭력의 희생자이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마구 폭행하고 아이를 두들겨 팬다. 아이는 순간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솟는다. 소년은 아버지를 처단할 만큼 엄청난 초능력(염력)을 보여준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의 숨은 능력을 어찌할 수 없는 모양이다. 그리고 10년이 흐른다. 서울 하늘아래 또 다른 특별한 사람이 있다. 폐차장에서 막일을 하는 임규남(고수)이라는 청년이다. 그는 생일날 교통사고를 당하고 일자리를 잃는다. 그러나 곧 ‘유토피아’라는 전당포에서 일하게 되면서 ‘초인’과 조우하게 된다. 초인은 여전히 한쪽 발을 절고(의족) 두 눈은 광기에 가득하다. 초인이 한번 눈을 희번덕하면 그 순간 세상의 시간은 딱 멈춘다. 그렇게 초인은 전당포의 돈을 훔쳐간다. 그런데 유독 임규남에게는 그 초능력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초인에게는 또 다른 초능력이 있으니 타인의 마음을 조종하는 것이다. 임규남은 초인의 정신감응에 따른 조종을 받아 마치 좀비처럼 변해버린 사람들의 공격을 받는다. 모든 사람을 조종할 수 있는 초인과, 그 초인의 초능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임규남의 최종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가정폭력이 빚은 초능력

이 영화는 가정폭력이 아동, 그리고 나아가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을 보여준다. 강동원이 연기하는 초인은 아버지의 폭력으로 어린 시절이 완전히 재가 되어버린 초능력자이다. 소년은 자신의 잠재된 초능력을 영원히 거부하며 단순한 행복을 꿈꾸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 손으로 애비를 죽여야 했고, 어머니는 그런 아들과 함께 이 세상을 하직하고 싶었다. 요즘 세상에 초능력자는 TV 기인쇼나 라스베이거스의  마술사 노릇만이 유일한 생존방법인 모양이다. 초인은 어린 시절 가족이 해체된 뒤 제대로 배우거나, 따듯한 사람의 정을 결코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리 허울 대 멀쩡한 강동원이라도 말이다. 그 엄청난 초능력을 가지고도 한다는 짓은 전당포 주인을 ‘freeze' 시켜놓고 금고 속 돈이나 털어가는 꽤나 좀스러운 하류인생을 보여준다. 반면 임규남(고수)은 어떤가. 임규남도 초인과 유사한 인생역정을 가졌으리라.  그가 내민 이력서와 사는 ‘꼴’을 봤을 때 그도 일반적인 성장 패턴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두 사람은 큰 차이를 보여준다. 한 사람은 사회를 증오의 측면에서 바라보고, 또 한 사람은 자기희생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국적 초능력자

영화 <초능력자>가 보여주는 초능력자는 할리우드 출신의 슈퍼 히어로들과 비교하면 규모와 정서가 완전히 다르다. <슈퍼맨>의 렉터나 <배트맨>의 조커 같은 전 지구적 악당은 아니다. 기껏 해봐야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전당포나 터는 소시민적 악당의 공상력을 보여준다. 당연히 그에 맞서는 영웅도 슈퍼맨이나 아이언맨과는 백만 광년 떨어진 존재이다.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언브레이커블>의 히로인처럼 끝없이 고통에서 허덕이면서도 그 고통을 이겨내는 예수 그리스도적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둘은 영웅이라기보다는 사회적 낙오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초능력자>의 시작은 가정폭력의 희생자이기에 전체 사회를 저주할 운명을 타고난 ‘초인’의 드라마틱한 부상에 초점을 맞추지만 의외로 그 초인은 사회순응자 마냥 칩거하고 제한된 초능력만을 사사로이 사용한다. 아마도 그런 그의 능력을 알아보는 임규남(고수)만 없었다면 그는 전당포 푼돈이나 몰래 훔쳐서 호텔에 무전취식하며 여생을 조용히 보냈을지도 모른다. 전체적으로 사회적 패악은 굉장히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죽였고(죽게 만들었고), 10년 뒤 고통을 끝내기 위해 어머니를 죽이고 싶어하지만 끝까지 머뭇거린다. 그는 저주받은 초능력을 받고 태어난 루저의 전형을 보여준다.

더욱 흥미로운 인물은 임규남이다. 임규남이 교통사고를 당한 뒤 퇴원 후 반지하방에서 일자리 찾아 전화하는 장면에서 잠깐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본다. 그 때 창밖 지상의 세상에는 미니스커트의 여자가 지나간다. 감독이 왜 그 장면을 굳이 넣었을까? 아마도 임규남이 ‘거세된 성인’이라는 상징일지 모른다. 그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지구에 떨어진 성자일 것이다. (모르긴 해도 그도 꽤 비극적 가족사를 프리퀄로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고수가 눈만 감았다면, 그리고 이어지는 사건들에서 한발 물러나기만 했다면 세상은 의외로 조용해졌을 텐데. 하지만 고수는 세상의 모든 죄악을 응징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기 주변의 사람들의 안녕을 위해 고통을 감수한다. 물론, 그 때문에 그의 몇 안 되는 사람들이 희생되고 말지만 말이다.

영화의 잔재미

김민석 감독은 정말 ‘초인’과 ‘고수’의 흥미로운 대결구도에 쏠쏠한 잔재미를 집어넣었다. 그것은 한국말은 너무나 유창하게 하는 두 외국인 노동자의 맹활약과 짧지만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주는 변희봉과 김인권, 물론 홍일점 정은채도 신선한 연기력을 선보인다. 폐차장에서 다국적 노동자들이 긴 테이블에 앉아서 점심을 먹는 장면은 분명히 의도적인 ‘최후의 만찬’ 패러디일 것이다. 물론 예수보다는 끝자락에 앉은 초라한 영웅을 위한 안식이겠지만 말이다.
이 영화를 보면 <엑스맨>시리즈보다는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가 떠오를 것 같다. 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루저이고, 영웅이란 결국 ‘찌질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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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아공 월드컵이 시작되었다. 한국은 첫 경기에서 그리스를 2:0으로 호쾌한 승리로 이끌면서 화려한 서전을 장식하였다. KBS, MBC를 압박수비로 꽁꽁 묶어두고 SBS의  단독 드리볼로 중계된 이 게임은 시청률이 70%에 달했다. 한국 팀이 잘하면 잘할수록 시청률도 따라 올라갈 것이다. 축구는 시청률을 견인할뿐더러 여러 가지 파급효과를 낳는다. 이전엔 축구 때문에 지역감정 차원이 아니라 국가간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었다. 이번 그리스 전 축구가 끝나고 편의점에선 콘돔판매가 4년 전에 비해 5배가 늘었다는 뉴스도 있었다. 역시 대단한 축구이다. 그 대단한 축구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영화가 월드컵 열기에 얹혀 개봉될 예정이다.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는 아니다. 바로 <맨발의 꿈>이다. 동티모르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쳐주는 한국아저씨 이야기이다. 동티모르라니? 동티모르라는 나라를 찾기는 쉽지 않다.

동티모르, 축구를 선택하다

동티모르는 서남아시아, 인도네시아의 한쪽에 있는 작은 나라이다. 400년 동안 포르투갈의 식민지였고 곧바로 인도네시아에 접수된 시련의 나라이다. 수많은 희생을 치르고 난 후, 21세기가 되어서야 독립국가가 되었다.(2002년) 이런 나라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곧잘 1인당 GDP를 이야기한다. 독립당시 400달러가 채 되었다. (지금 우리나라는 16,500달러란다!) 여하튼 우리나라 강원도보다 조금 작은 국토면적에 100만 명 정도의 국민이 가난하게 산다. 외세의 지배와, 해방, 가난의 경험이 있는 한국으로서는 묘한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독립의 혼란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UN다국적군의 일원으로 상록수부대가 파병되기도 한 나라이다.

한편, 김신환이라는 축구선수가 있었다. 선수시절 축구만 한 사람이 선수생활을 관두면 어찌될까. 김신환 선수는 잘 안 풀린 경우이다. 1980년대에 실업팀 선수생활을 하다가 사회로 뛰어들었다. 연신 사업에 실패하고 그 탈출구로 인도네시아를 찾았다. 물론, 외국에서도 안 풀리긴 마찬가지. 있는 돈 없는 돈 다 날리고 실의에 빠져 이국땅에서 술잔을 기울일 때 알아들을 수도 없는 현지TV의 뉴스에서 낯익은 모습을 보게 된다. 동티모르의 한국군 부대가 현지인에게 태권도를 가르치는 장면이다. 김신환 감독은 무작정 동티모르란 곳으로 날아간다. 눈앞엔 맨땅에서 맨발의 어린이들이 축구공을 차고 놀 뿐이다.

 

한국인, 축구를 가르치다

영화는 김신환 감독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삼는다. 김신환 감독은 동티모르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치고 국제유소년대회에서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는 기적을 일군 ‘동티모르의 히딩크’ 소리를 듣는 사람이란다. 박휘순은 이 영화에서 사업실패를 거듭하고 동티모르까지 내몰린 축구선수 출신 한국인 사업가 김원광 역을 맡는다. 에스키모에 냉장고를 팔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이들 동티모르 사람에게 축구화를 팔겠노라고. 멋진 ‘짝퉁’ 축구화, 화려한 ‘짝퉁’ 유니폼을 쌓아두지만 파리만 날릴 뿐 단 한 켤레도 안 팔린다. 이유는 1인당 GDP가 바닥인 나라에서 축구화는 호화사치상품일 따름이다. 김원광은 사업 아이디어를 짜낸다. 아이들에게 우선 축구화부터 신겨놓고 축구를 하게 한다. 돈은 매일 1달러씩 후불제로. 아이들은 열심히 축구공을 차고, 시장에서 열심히 돈을 벌지만 하루에 1달러씩 갖다 바치는 것은 너무나 힘든 미션이다. 하나둘 짝퉁 축구화를 반납한다. 게다가 어수선한 동티모르 정세는 테러와 폭동 수준의 내전으로 발전한다.

크로싱의 감독, 동티모르를 가다

어찌 보면 뻔할 것 같은 스토리이다. 좌절을 맛보고 서울에서 내려온 코치가 시골에서 가능성이 많은 야생소년을 잘 조련시켜 중앙무대에 화려하게 데뷔시킨다는 그런 성공담 말이다. 종목은 축구이고, 민족 분규가 곁들여진 다국적 영화이다. 이 영화의 감독 김태균은 <크로싱>이라는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영화를 만들었던 사람이다. 북한에 기근이 들고 북한인민들이 굶어 죽어간다는 것은 다 아는 이야기인데 김태균 감독은 그 ‘다 아는 이야기’를 눈물겹게 그려냈었다. 그 영화에서 가난한 아버지 차인표와 아들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축구‘뽈’을 다루는 장면이 있었다. 축구는 가난한 사람에게는 희망을, 부유한 사람에게는 열정을 안겨주는 모양이다. 김태균 감독은 가난한 동티모르 아이들에게 축구공을 던져주고, 한국식 스포츠맨십과 한국식 이상을 심어준다. 잘 차면 성공할 수 있고, 비록 성공할 수 없더라도 그 과정에서 보람과 내일의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메시지 말이다.

동티모르, 공 하나에 희망을

영화에서 벌어지는 동티모르의 민족분규는 우리로선 상상하기 힘든 그림이다. 파괴와 공격을 펼치는 사람은 동티모르의 독립을 반대하는 친인도네시아 세력이다. 독립과정에서 수만에서 수십만 명의 동티모르인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고 그 상처는 여전히 남아있다. 그런 힘든 과정을 무릅쓰고 인종적 갈등과 역사적 아픔을 치유하는 수단으로 아이들의 축구가 활용된 셈이다. 한국인 축구감독은 처음에는 몰랐겠지만 말이다. 아프리카의 가난한 소년들의 유일한 희망이 유럽리그에 진출하여 큰돈을 버는 것처럼, 동티모르의 아이들도 인도네시아 리그에 진출하는 것이란다. 그 가난한 소년들은 한국인 축구화 장사꾼의 꾐에 빠져 비싼 축구화를 신어보고, 게임을 통해 영원한 스포츠경기의 이상적인 형태인 팀워크를 다져보는 것이다. 축구선수들 하나하나는 동티모르의 역사가 남긴 아픔과 슬픔을 안고 산다. 축구를 통해 서로 뭉치고 달리면서 협력하는 것이다. 국가의 영광이나, 빵 한 조각은 뒤에 남겨진 이야기이다. 결국 이들은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리베리노컵 국제유소년 축구대회에서 2년 연속 우승했단다.

힘내라, 대한민국 외교관들

해외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외교부 사람들이라면 굉장한 프라이드를 가진, 멋진 세계인일 것이다. 아마도 UN의 한국대사관 직원을 생각한다면. 그런데, 이라크나 (그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그 나라에 우리 대사관이 개설되었는지조차 몰랐을) 동티모르에서 일하는 우리 외교관들은 어떤 모습일까. 모르긴 해도 이 영화에서 배우 고창석이 연기하는 박인기 서기관의 모습 아니겠는가. 전쟁만큼이나 살벌하고, 개성 강한 한국인이 와서 사고라도 치면 뒷수습하기 바쁘고, 한국의 위상에 맞는 거드름도 피워야하고..... 고창석이 연기하는 동티모르 주재 박인기 서기관을 통해 우리나라 외교관의 고달픈 업무를 엿볼 수 있다. 드라마 <아이리스> 촬영에 서울시가 전폭적인 지원을 했었고, 몇몇 영화나 드라마 작품에서 국정원이 협조했었다. 이 영화를 통해서는 우리 외교통상부는 이미지에 있어 굉장한 ‘플러스’ 평가를 받게될 것이다.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세계 평화에 최선을 다하는 그런 존재로서 말이다. 영화는 어찌 보면 한국전쟁 직후 “기브미 쪼코렛”하며 ‘양키’를 쫓아가던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지만, 그보다 훨씬 현실적이며, 인간적이며, 또한 이상적이다. 이 영화는 그런 아날로그적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동티모르에서 영화촬영을 앞두고 오디션을 실시했는데 ‘영화’란 것이 처음 만들어지는 나라라보니  오디션 자체가 힘들었단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축구를 하는 배우들은 김신환이 가르친 축구선수 위주란다. 아마추어들로 채워진 영화임에도 여느 이란 감독의 영화보다 훨씬 리얼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동티모르 유소년축구선수들이 어렵게 일본에서 펼쳐지는 국제대회에 참가하게 된다. 동티모르로서는 건국 이래 첫 번째 국제대회 참가이다. 이 영화에선 정말 눈물겨운 경기실황 생중계 장면이 있다. 모두들 라디오 앞에 모여 중계방송을 들을 때 대통령 집무실에서 그 나라 대통령도 함께 환호하며 즐거워한다. 바로 ‘샤나나 구스망’이다. 이 영화 촬영당시에는 동티모르 대통령이었고, 지금은 국무총리이다. 동티모르 사람들은 김신환 감독을 기억하고, 동티모르의 어린 축구선수들은 박지성 선수를 자신들의 별로 여긴단다. 이 영화는 축구영화로, 그리고 동티모르에게 한국이 작은 희망을 안겨준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오 필승 동티모르~

김태균 감독은 정말 기묘한 영화를 만든다. 영화의 완성도를 따지기 전에 그 스토리에 감동받게 하는 이야기꾼이다. 그가 다음 번 영화에서는 이라크의 지뢰소년을 담든, 아프가니스탄의 눈먼 소년을 다루든, 아니면 소말리아의 해적꼬마를 주인공으로 하든 우리는 전혀 다른 국제적인 우리들의 꿈을 엿보게 될 것 같다. 돈잔치로 얼룩진 월드컵 축구가 시들해지면 극장으로 가서 이 영화를 꼭~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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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60년이 되었다. 반만년을 같은 민족으로 자처하던 한민족이 38선이라는 인위적인 금이 그어진지 딱 5년 만에 벌어진 전투에서 수백만 명이 희생되었다. 그리고 그 생채기는 너무나 오래, 깊이, 아프게 남아있다. 당시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이제 노년이 되어 역사 속으로, 기억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그리고 올해 영화와 TV드라마로 한국전쟁이 되살아나고 있다. 이것은 꼭 MB정권/천안호가 가져온 우리 사회의 보수화, 우익화 경향은 아니다. 원래 영화판이나, 대중문화라는 것은 계기성 콘텐츠를 기막히게 찾아내어 업그레이드 시키는 동네이니 말이다. 올해 꽤 많은 전쟁영화가 기획, 제작되고 개봉을 준비 중이다. 언젠가부터 잊어진 전쟁으로만 여겨졌던 한국전쟁이 대중문화 영역에서 붐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그 스타트는 이재한 감독의 <포화 속으로>이다.

1950년 8월 11일, 포항여중

 

영화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인민군이 급습하고 서울이 사흘 만에 점령되고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온다. 국군은 UN군만 애타게 기다리며 낙동강 전선에서 혈전을 펼친다. 낙동강 전선이 무너지면, 부산까지 내몰리고 모두 태평양바다에 풍덩 빠져죽는 일만 남았다. 이때 포항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영덕이 무너지고, 군인들은 낙동강 전선으로 몽땅 투입된다. 그러면서 포항여중 학교에는 갓 투입된 학도병 71명만이 남는다. 총을 쏘아본 적도, 전쟁이 뭔지도 모르는 학도병들.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사흘 만에 수도를 휩쓴 막강 인민군을 분쇄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루만이라도 그들의 남진을 막는 것이다. (마지막 한 사람까지 다 죽더라도!) 실제 1950년 8월 11일 학도병들은 야수같이 달려드는 인민군을 ‘11시간동안’ 막아선다. 그때의 전사는 포항여중에 비석으로 남아있단다.

2010년, T.O.P, 권상우, 그리고 차승원

영화는 1950년 영덕 전투를 보여준다. 탱크까지 앞세운 인민군의 파상공세에 국군은 무참하게 쓰러져간다. 그곳에는 오장범(T.O.P)이 있다. 얼마 전에 어머니에게 큰절하고 트럭타고 전선에 투입된 학도병이다. 총을 쏘아본 적도, 북한 사람을 본적도 없는 그의 눈앞에서 포탄이 사방에서 터지고 국군들의 사지가 찢겨나가는 장면을 목도한다. 총을 단 한발도 제대로 쏘아보지 못한다. 그리고 살아남은 그는 포항의 한 학교로 이동한다. 트럭에 실려 온 71명의 학도병에게 총 한 자루와 총알 250발을 나눠주고는 ‘정식’ 군인들은 모두 낙동강 전선으로 이동한다. 이제 이곳에 남은 것은 초짜, 학도병 71명뿐. 국가의 안위가 걱정되는 국군 강석대 대위(김승우)는 포항의 운명을 이들 어린 영혼에게 맡겨놓고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야한다. “학도병은 군인인가 아닌가?”고 자탄하며. 이후 영화는 순수한 소년이 어떻게 살벌한 전쟁에서 애국자로, 야수로, 전사로 바뀌는지를 보여준다. 얼마 전까지 시시덕대며 싸움질을 하던 동료가 비명에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그들은 동질감을 느끼고, 전우애를 갖게 되는 것이다.


 영화에서 오장범 역할을 맡은 것은 빅뱅의 멤버 T.O.P이다.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대사가 거의 없는 잔인한 킬러 역을 맡아 강인한 인상을 주었던 그는 이번 영화에서는 신병 트라우마를 간직한 청년으로 거듭난다. 권상우는 개인적 복수심에 불타는 비열한 건달에서 ‘폼생폼사’ 애국자로 거듭나는 드라마틱한 역할을 맡았다. 둘의 화학적 결합은 예측가능하면서도, 극적 긴장도를 배가시키는 절묘한 효과를 나타낸다. 인민군 장교 박무랑(차승원)에게는 이들은 젖비린내는 아이들에 불과하다. 당성을 내세우며 사사건건 최고지도자를 들먹이는 정치군관마저 우습게 아는 차승원에게서 ‘패튼’의 그림자 - 정복심에 불타는 군인 -를  엿본다. 그런 차승원이 ‘젖비린내 나는 아이’와 처음 맞닥쳐서는 주저하게 된다. 당성과 혁명성에 앞서 어이없는 인간성에 멈칫하는 것이다.

고답적 애국심과 현대적 가치관의 만남

한국전쟁의 기원에 대한 논란만큼, 그 봉합에 대한 시각도 다양하고 극단적이다. 이 영화에서는 비록 태극기와 인공기가 펄럭이지만 이데올로기의 주장은 없다. 명령과 자의에 의한 진군과 대치만이 군인과 학도병들을 짓누른다. 군사작전에서 보자면 인민군 장교의 행동은 독단적 판단에 의한 엄청난 과오이며, 학도병의 편제는 황당한 호구책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은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 셈이다. 적의 의도는 분쇄되었고 아군은 한숨 돌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후 3년 동안 더 치열한 전투가 이어진다.

 이 영화의 제작비는 117억 원이란다. <태극기 휘날리며>만큼이나 스펙터클한 화면을 보여준다. 아니 그보다 훨씬 나아진 CG와 특수효과는 전쟁의 생생함을 <라이언 일병구하기>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애국심을 내세우며 감동을 강요(?)하던 전쟁영화가 뜸해진 것은 대중의 정서 탓일 것이다. 이데올로기나 휴머니즘의 일방적 강조는 피곤하니까 말이다. 대신 화끈한 불바다 위주의 시각효과, 아니면 아예 피아의 구분이 필요 없는 고귀한 인간성의 발현을 좋은 영화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런 면에 보자면 이 영화는 애매하다. 적과 아군이 분명하고 어쨌든 아군이 이기는 구닥다리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용감한 박 대위나 김 상사 대신에 어제까지 펜을 들고 공부했을 학생들이 총을 들고는 람보가 되어버리는 것은 할리우드 스타일이다. 아마도 이것은 이재한 감독의 연출 스타일이라기보다는 각본에 참여한 제작자(아이리스의 제작자이기도 한) 정태원 입김인 듯하다. 구국의 열정에 불타는 학도병의 희생은 한 줄 기사, 하나의 비석으로도 끝나버리는 것이 요즘 세태이다. 영화의 흥행을 위해서는 플러스알파가 필요한 것이다. 수출까지 염두에 뒀다면 말이다.

전쟁은 끝났다. 전쟁의 기억은 많은 사람의 뇌리에서 이미 봉인되었다. 이 영화는 어느 정도, 아니, 예상 밖으로 큰 흥행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된다면 정작 보여주고자 했던 ‘71명의 애국심’보다는 다른 학습효과가 있을 듯하다. 6.25는 실제 있었고, 인민군은 용감했고, 한국은 학도병까지 처절하게 싸웠으며, 마침내 태극기가 휘날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가끔 삼일운동이 몇 년에, 625가 언제 일어났는지 모른다는 청소년에 대한 기사를 읽을 때마다 "진짜 그 정도일까" 생각했는데  한류 톱스타 ‘T.O.P’와 ‘권상우’가 중요한 가르침을 준 셈이다.

사족. 이 영화가 급하게 후반편집을 마치고 지난 달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 최초 시사회를 가졌었다. 그런데 영화 인트로 장면에서 사단이 났다.  “해방된 지 얼마 후,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공격으로 전쟁이 시작되고....”라는 자막이 흐르고 불타오르는 지도로 급박한 정세를 보여주는 흔한 오프닝이다.  그런데 그 지도엔  ‘동해’가 ‘Sea of Japan'(일본해)로 표기되어 있었단다. 그게 나중에 한국에 알려지면서 일부(혹은 전체?) 네티즌의 항의가 있었고 영화사는 신속하게 사과성명을 내고 그 장면을 수정하였다. 이재한 감독은 자신의 잘못이라고 시인하고서 말이다. 영화사 측은 굉장한 홍보효과를 노리고 특별히 미국 대학에서 시사회를 가졌는데 엉뚱한 논란만 일으켰다. (학습효과가 하나 더 있다.  영화인들도 '독도는 우리땅'만큼이나 '동해' 명칭에 주의를 기울여라는 것이다!)  영화 개봉 전에 포털사이트의 영화 소개페이지를 찾아보니 빠지지 않고 나오는 네티즌의 말이 있다. “Sea of Japan 영화, 망해라!”라는 것이다. 남북한이 싸운 한국전쟁의 의미보다는 일본이 우리 공동의 적이라는 일부(혹은 전체?) 네티즌의 정서를 대변하는 듯하다. 미래지향적으로 보자면 아주 좋은 정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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